거기 있어 주세요!


해 질 녘의 고즈넉함. 낮과 밤이 서로 만나는 시간. 우리는 너무 바쁘니까 알 수 없어요. 퇴근을 기다리거나 야근을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시간이니까요. 그 시간 이태원의 어딘가를 찾았어요.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찾았다고요. 찾았다! 한적한 골목은 숨어있지 않아요. 찾는 사람에게 너그럽게 곁을 내줘요. 어딜 가야 할지 잘 모르면 어때요. 발견하는 기쁨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냥 걷는 거죠. 골목을 다닌다는 감각은 이게 맞지. 목적지를 향해 걷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눈을 멀게 만들지도 몰라요.

어슬렁거리며 걸어야 보일 거예요. 지도 앱의 화살표는 정경을 담아 보여주지 않아요. drunken SALON도 꼭 그렇게 찾고 싶은 장소에요. 진짜로요. 지도 앱에 검색해서 목적지로 설정하는 것은 이 공간과 어울리지 않아요.차라리 이 동네에 살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자주 가는 동네 미용실이 drunken SALON이라면, 말 그대로 사는 기쁨이 하나 더 늘어날 것 같은 기분일 테니까.

Intro

장진우 거리라고 말하는 게 훨씬 정확할 것 같아요. 요즘 유명해진 에끌레어 가게를 지나고 귀여운 강아지 옷 파는 가게도 지나 골목의 거의 끝에 다다르면 있어요. 이 거리의 시작부터 함께 했을 거예요.그러니까 요즘 유명해진 것이 더는 유명하지 않거나 사라진다고 해도 아마 그대로 있을 것 같아요. 드렁큰 살롱 말이에요.

drunken salon헤어살롱의 상징 컬러는 역시 청색과 백색과 적색이에요. 드렁큰 살롱의 아웃테리어도 세 가지 색의 조합이에요. 커다란 창과 리본 모양의 심볼도 매력적이지만, 붉은 색 문이 제일 눈에 들어와요. 저 문을 자신 있게 열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공간에 위화감 없이 젖어 드는 느낌이라면 꽤 멋진 사람으로 보일 것 같거든요.

 

Detail

drunken salon

오렌지 색 페인트로 벽을 칠하려면 얼마나 과감해야 할까요? 흰색은 무난하고 검은색은 안전해요. 하지만 드렁큰 살롱은 화려해요. 색을 사용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어 보였어요. 캐비닛과 의자와 쿠션과 소파의 커버도 각자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었고요. ‘내가 보기에 예쁜 것을 가져다 놨을 뿐이야. 그러면 뭐 어때.’ 하는 사장님의 뒷모습과 잘 어울린다고 해야 하나.

drunken salon밖이 너무 춥다며 커피 한 잔을 주셨어요. 명함과 함께 건네주시는 휴지까지 드렁큰 살롱 로고가 예쁘게 박혀 있어요. 특색있는 샵을 만들기 위해 브랜딩에 많은 고민을 하셨던 것이 틀림없어요. 저는 로고 스티커도 하나 얻어왔어요.

drunken salon왜 헤어살롱 이름이 드렁큰살롱이냐고요? 정말 이곳은 맥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헤어샵이거든요. 사장님이 맥주를 좋아해서 갖다 놓으셨다는데 정말 독특하고 좋은 생각 같아요. 내가 좋아하는 것은 어딘가의 다른 누군가도 좋아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거잖아요. 헤어샵과 맥주의 조합이라면 기다리는 시간이 조금 길어도 괜찮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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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cedure

drunken salon

오늘 나는 커트 할 예정이었어요. 시술 상담을 받고 머리를 하러 들어갔는데 또 눈에 확 띄는 핑크! 머리를 아직 자르기도 전이었지만 마음이 두근두근. 이런 곳에서 머리를 자른다면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drunken salon

처음 본 사이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부담스러울 수 있는 일이잖아요. 하지만 사장님은 묵묵히 머리를 해주시면서 내가 궁금해하는 이야기들에 조곤조곤 답해주셨어요. 어색할지도 모르겠다고 염려했던 것과는 달리 편안한 분위기에서 시술이 진행되었어요.

 

Outro

drunken sal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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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인터뷰에선가 사장님은 이 일이 정말 재밌어서 하는 것이니, 더 재미있는 일이 생기면 언제라도 새로움을 위해 떠날 수 있다고 했어요. ‘내가 이만큼이나 왔는걸, 이제 와서 도전을 어떻게…’하는 생각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것에 열정을 바칠 수 있는 모습이 멋있다고 생각해요. 이 헤어샵은 현재 4년째 진행 중이에요.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내일이 있지만 개성 있는 이 동네와 닮아있는 드렁큰 살롱을 오래오래 보고 싶어요.

 

한 줄 평

아주 한적했던 이 동네의 정서를 느끼고 싶다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사장님이 떠나기 전에.

 

edit : 제형준 / design : 박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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